대한민국의 前 군인이자 정무직공무원. 前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나이 고향 학력 군사경력 프로필
김관진
金寬鎭 | Kim Kwan-jin
출생
1949년 10월 18일 (74세)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본관
경주 김씨
재임기간
제20대 제3야전군사령관
2005년 4월 4일 ~ 2006년 11월 17일
제33대 합동참모의장
2006년 11월 17일 ~ 2008년 3월 25일
제43대 국방부장관
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29일
제2대 국가안보실장
2014년 6월 1일 ~ 2017년 5월 21일
부모
아버지 김영문
배우자
김연수
자녀
슬하 3녀
학력
전주중앙국민학교 (졸업)
전주북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20회 / 졸업)
육군사관학교 (28기 / 학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경력
제43대 국방부장관
제2대 국가안보실장
재단법인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2년 ~ 2008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28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제2군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제35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육군교육사령부 전투개발차장
제7보병사단 부사단장
합동참모본부 군사전략과장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여단장
제15보병사단 작전참모
제15보병사단 제50보병연대 2대대장
상훈
1983. 10. 보국훈장 삼일장
1989. 4. 대통령 표창
1997. 10. 보국훈장 천수장
2003. 10. 보국훈장 국선장
2008. 4. 보국훈장 통일장
2008. 미국 정부 공로훈장
김관진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전라북도 임실군 출신으로 전주북중학교와 당시 명문인 서울고등학교(20회)를 졸업하고,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까지 지냈다. 2008년에 예편했으며, 최종 계급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다.
이후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전으로 인하여 전임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장관직을 사임하자, 26일에 그 후임 장관으로 내정되었고 다음 달 4일 정식으로 제43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됐다. 그리고 2014년 6월 1일, 전임인 김장수 초대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이임 후, 국방장관직은 후임인 前 합참의장 한민구 장군이 맡게 되었다. 퇴임 후에는 국방부를 동원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정황과 증거문서가 발견되고 재판 중에 있으며,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3년 5월 10일,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급 위원으로 내정되었다.
김관진 육사 생도 시절
학업 우수자로 육사 기수 중 단 두 명만 선발되던 서독 육군 파견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 육사 1학년 수료 후인 1969년에 서독으로 유학을 떠났다.
서독 군사유학생들은 도착 후 우선 서독 국방부 산하 군사언어학교에서 6개월간 독일어 연수를 받고, 2개월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병과를 결정한 뒤 사관학교 교육을 받았다. 김관진은 같이 유학을 떠난 동기 박흥환과 함께 보병 병과를 선택하여 뮌헨에 있었던 독일 제3 육군사관학교(Heersoffizierschule III)에 배치되었다. 김관진이 수학하던 제3 육군사관학교에는 한국과 비슷한 처지의 후진국 출신 생도가 여럿 유학 중이었고, 그들 중 한 달 60달러로 생활해야 했던 김관진도 졸업할 때까지 그럴듯한 식당에서의 식사 한 번 못 해봤다고 한다. 그리고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1,000마르크를 모아 중고 폴크스바겐 승용차를 사서 파리 등 유럽 여행을 해보았다고 한다.
이 당시의 서독 육군사관학교는 순수한 장교 양성기관으로, 과정을 모두 마치면 장교로 임관은 하되 학사 학위는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일 군사유학생들은 동기 육사 생도들과 달리 자동으로 학사 학위를 받지 못했다. 대신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김관진에게 서울대학교 위탁 교육으로 학위를 딸 것을 제안했으나, 김관진은 자신이 "군인이 되기 위해 육사에 갔지, 서울대 가려고 육사를 간 게 아니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상당 기간 최종 학력이 '고졸'이었으나, 한참 뒤에야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 대학 졸업 학력을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김관진 육군 장교 시절
주요 경력
소위 1972년 임관 / 보병
제32보병사단 수색중대 소대장
제12보병사단 제52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 소대장
중위
서울대학교 학군단 교관
대위
서울대학교 학군단 교관
서독 육군 전투병과학교 고등군사반 이수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03차량화보병대대 제3중대장
육군보병학교 전술학처 전술교관
소령
육군대학 정규과정 이수
대통령경호실 상황장교
중령
제15보병사단 제50보병연대 제2대대장
제15보병사단 작전참모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군사대책계획총괄장교
국방대학교 대학원 안보과정 이수
국방부 818기획단 법규과장
대령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여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략과장
대통령비서실 파견 근무
준장
제7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육군교육사령부 전투개발부 차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장
소장
제35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중장
제2군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대장
제3야전군사령관 (제20대)
합동참모의장 (제33대)
전역
국방부장관 (제48대 / 이명박 정부 ~ 박근혜 정부)
국가안보실장 (제2대 / 박근혜 정부)
군 내에서 상당한 엘리트로 통했다. 독일 유학파, 수기사나 서울대 학군단, 대통령경호처/비서실 근무 경력, 고위직 진급 후 거친 참모 경력 등이 모두 군에서 인정받은 엘리트의 상징과도 같은 직책이다. 사실 김관진 외에도 독사파(독일육사파)는 대개 엘리트였다. 류제승, 김태영, 박찬주 등. 이들은 생도 시절 3년간 국외에 있었고 이후로도 독일 병과학교를 다녀오고 독일에 파견되기도 하는 등 국제감각이 있던 터라 군내 정책/전략 전문가가 많았고 김관진도 그런 경우다. 김태영은 합참 전쟁기획과장, 류제승과 박찬주는 김관진과 같이 합참 군사전략과장 출신이다.
합동참모의장 김관진
2006년 11월 17일, 군의 최고 선임자인 합참의장이 되었다. 이후 1년 4개월 만에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교체 이후 이루어진 군 인사에서 김태영 제1야전군사령관에게 직을 이임하였다.
국방부장관 김관진
2010년 12월 4일, 연평도 포격전 이후 김태영 장관의 후임 국방장관이 되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군의 인사들을 불신하여 여러 장관 후보를 탐탁찮게 여기던 와중, 누군가의 천거를 받은 김관진을 만나 몇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이 장관 지명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대담 내용은 정확하진 않으나 도발에 대해 가장 강경한 대응을 불사할 것임을 피력하였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나 건보료 탈루 등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당시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전례없는 북의 도발 행위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강경한 대응을 주장한 김관진의 청문회는 큰 문제 없이 통과되었다. 이 부분은, 민간인 교수들이 직을 이용하여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장관 청문회에서 줄줄이 털리는 것과 달리, 이미 현역 시절부터 진급 시기마다 철저한 인사검증에 시달리던 군인 출신이 보임되는 국방장관 청문회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퇴임할 때까지 가장 강경한 수준의 대북 정책을 주장했던 터라, 장관 재임 당시 전군에 선조치 후보고의 매뉴얼이 항상 강조되었다.
2010년 12월 4일, 취임식 이후 북한의 포격도발 현장인 연평도를 방문했다.
국장장관 재임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자신을 영웅화하는 합성사진들을 몰래 만들어 뿌렸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의 포스터를 이용한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진이나 포스터는 “국방장관의 강력한 대응의지가 도발 억지에 도움이 됐다”거나 “북한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분이죠”라는 글들이 달려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당시 군내부에서는 김 장관이 나중에 국무총리는 물론 대통령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2011년 5월 27일, 축사를 통해 청해부대 6진 최영함의 귀항을 축하하고, 청해부대 장병 가족들의 건승과 해군의 발전을 기원하는 멘션과 함께 축배 제의를 했다.
2011년 7월 1일, 제5보병사단 최전방의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하였다.
2012년 3월 15일 핵안보정상회의를 준비중인 코엑스를 방문해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관계관들을 격려했다.
2013년 3월 22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내정했던 후임 국방장관 후보자인 예비역 육군대장 김병관 장군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드러나 자진 사퇴함으로써, 김관진 장관이 유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방부 장관이자 박근혜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서 국방업무를 계속 총괄하게 되었다. 이에 뒷이야기가 좀 있는데, 골치 아픈 일도 다 그만두니 유학 중인 딸이나 보려고 관사에서 짐 다 빼고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다가 덜컥 유임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년이라고 무시하던 실무자들이 유임 후 굽신굽신하는 모습을 꼬집기도 했다.
2012년 10월 15일 '노크귀순' 사건과 관련,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2013년 4월 9일 TV조선의 보도영상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김관진 실장을 김관진놈이라고 부르며, 훈련 때 목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놓고 훈련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이명박을 비롯한 보수 정권의 주요 인물들이 공개적으로 강경한 대북 정책을 취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김관진은 전임 장관이었던 김태영이 사실상 경질될 무렵 강조되었던 '도발 원점 타격', '적 지휘부 공격', '선조치 후보고'를 임기 기간 내내 전군에 강조한 바 있었다. 북에서 김관진놈이라고 사진을 가지고 붙인 것은 김관진이 북에서 두려워하는 군인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후술할 논란에서도 기술되었지만, 김관진 장관 시절 국방부 사이버 사령부를 통해 댓글 여론 조작에 가담하며 유포한 내용 역시 김관진이 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군인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댓글 조작 판결이 확정나고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론사들과 커뮤니티에서 2차 유포되고 있는 내용이다.
2013년 11월 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유승민 국방위원장의 질문에 북한이 대규모로 장사정포 공격에 나설 징후가 있을 경우 선제 타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3년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에 출석해 "우리가 단독으로 전쟁을 하면 북한을 충분히 응징할 수 있느냐"는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의 질문에 "전쟁 나면 북한은 멸망"한다고 답했다.
2014년 6월 10일, 국방부장관 주관 국방 방산발전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업적과 달리, 이 시기에 군형법상 금지되는 정치관여행위(댓글 작성, 정치적 의견 공표)에 공동정범으로 가담하기도 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퇴임 후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2014년 6월 1일 세월호 참사 수습 실패로 인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사퇴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후임 장관 인선이 늦어져 한민구 전 합참의장이 신임 장관에 임명될 때까지 한동안 장관직과 안보실장직을 겸임하였다. 2015년 8월 22일 판문점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바 있다.
2016년,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THAAD 배치를 발표했다.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
2023년 5월 10일, 윤석열 정부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급 민간위원으로 내정되었다. 명목상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겸직하지만, 전임 국방장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위원장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을 받는다.
군형법 및 형법에서 처벌하고 있는 정치관여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상 유죄가 확정된 상태로 여전히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위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유죄의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2023년 5월 11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혁신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고 김관진 전 장관 등 민간위원으로 위촉된 8명의 위원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벌금형 확정 즉시 대통령 권한으로 사면해 버린 김태효와 달리, 김관진은 실형 선고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2심에서 징역 2년 4월을 선고했다). 계속 위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참고로 국방혁신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르면, 위원의 임기는 2년이며, 유죄의 확정판결이 나올 경우 위원직에서 당연히 해촉되는가의 여부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최종적으로 실형이 확정되는 경우는 위원직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논의의 여지가 없겠지만, 징역형의 선고유예,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이 확정되는 경우에는 극단적으로는 그냥 위원직을 유지할 수도 있다.
2023년 8월 18일, 파기환송심에서 '댓글 공작' 등 정치관여 혐의와 대선 개입 수사를 무마하려 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방어권 보장 및 도주우려 없음을 이유로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지만 김관진의 공직 생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김관진 전 장관이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관진 연도별 전체 경력
1972. 4.~1973. 2.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
1973. 2.~1973. 6. 육군보병학교(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구. 초등군사반)) 교육
1973. 6.~1974. 3. 12사단 52연대본부 전투지원중대 소대장
1974. 3.~1976. 1. 육군종합행정학교 101학군단 교관
1976. 2.~1977. 4. 서독 전투병과학교(대위 지휘참모과정(구. 고등군사반)) 교육
1977. 5.~1978.11. 수경사 203 차량화보병대대 3중대장
1978.11.~1981. 3. 보병학교 전술학처 전술교관
1981. 3.~1982. 2. 육군대학 정규과정 교육
1982. 2.~1983.10. 대통령경호실 경호실요원(파견)
1983.10.~1985.12. 15사단 50연대 2대대장
1985.12.~1988. 1. 15사단 작전처 작전참모
1988. 1.~1989. 2.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군사대책계획 총괄장교
1989. 2.~1989.12.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교육
1990. 1.~1990. 9. 국방부 818기획단 법규과장
1990. 9.~1992. 3.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여단장
1992. 3.~1993.12. 합참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략과장
1993.12.~1996. 1. 대통령 비서실 파견
1996. 1.~1996. 1. 7사단 부사단장
1996. 1.~1996.11. 교육사령부 전투개발부 차장
1996.11.~1998. 4. 육군본부 비서실장
1998. 4.~1998.11. 육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략기획처장
1998.12.~1999. 4.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장
1999. 4.~2000.10. 35사단장
2000.10.~2002.10.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2002.10.~2004. 5. 2군단장
2004. 5.~2005. 4.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2005. 4.~2006.11. 3군사령관
2006.11.~2008. 3. 합동참모의장
2008. 4.~2010. 7.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비상근)
2010. 12. ~2014. 6. 국방부 장관
2014. 6. ~ 2017. 5. 국가안보실장
2023. 5. ~ 국방혁신위원회 위원(부위원장급)
김관진 여담 일화
2011년 5월 2일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공식적으로 트위터 활동을 시작했다. 민감한 정보와 현안을 제외한 다양한 국방정책에 대해 장관 본인이 직접 국민과 소통의 장으로써 트위터를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한편, 2012년 1월 2일 국방장관의 트위터로 7사단의 한 병장이 직접 소원수리 멘션을 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취임한 원홍규 사단장이 전방 격오지 사단의 휴가에 1일씩 붙여주던 '1야전군 위로 포상'과 함께 잡다한 포상 휴가들을 일거에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김 장관의 집무실 의자 뒤편 벽에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군사보좌관 김격식 등 북한군 수뇌부의 사진이 A4용지 크기로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적들의 사진이 장관의 집무실에 걸려있다는 것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적이 장관의 등을 노려보고 있는 만큼 한시도 적을 잊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1년 8월 10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김관진 장관 암살을 위한 간첩단이 국내에 잠입 중이라고 했으나, 이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로 판명났다.
2012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관련해 "국민의 이해와 필요성이 있다면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3년에 그랜저 HG로 차를 바꿨는데, 그전에 타던 95년식 기아 크레도스를 중고로 내놓으려다 폐차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차량 감정가가 고작 50만 원이었기 때문. 1기수 선배인 김장수는 국방부 장관 청문회때 자가용이 크레도스의 전신인 기아 콩코드로 밝혀지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김장수 취임시점에 후신격인 로체조차 끝물이었고 곧 K5가 로체 후속으로 출시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장성으로서 10년이 넘도록 중용된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서 참여정부에서 국방개혁과 전작권 반환을 적극 찬동하다가 기조가 바뀐 보수정권에서는 180도 바뀐 모습을 보여주는 줏대없는 인물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허나, 문민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제복군인이 정부 방침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정권이 바뀌었다고 직을 던지고 정계에 들어오는 식으로 정치 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쪽이 군인으로서보다 자연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2017년 5월 29일 주진우,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안민석 의원이 출연한 SBS 라디오 방송 중,노승일 전 부장이 “내가 ‘박원오 원장님이 너(정유라)네 아버지(정윤회)랑 형님 동생 한다는데?’ 그러자 유라가 ‘웃기지 말아요. 우리 아빠는 김관진 아저씨하고만 형님동생이에요’라고 말해서 저는 ‘김관진? 국방부장관?’ 이렇게만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질문 안 던졌다”는 주장을 꺼냈다. 이어서, 노승일 전 부장은 당시 정유라의 남편(신주평)의 대한 병역비리에도 관련되었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미 신주평의 병역 비리 의혹은 안민석 의원의 실수임이 밝혀졌다. 신주평 본인은 2016년 12월 5일 채널A 단독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본인은 처음부터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으며, 1회 연기했으며 2017년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현역병 입영장까지 공개하며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용산 이전을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무-IV-4 SLBM 개발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2015년 당시 북한이 북극성 SLBM 테스트를 감행하자 김관진 당시 청와대안보실장이 총대를 메고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국산 SLBM 개발을 지시했던 것.
그가 국방부 장관 시절이었던 2013년에는 유사시 북한 영공을 침투시킬수 있도록 국방과학연구소에 북한 무인기 복제품을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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