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이다. 그레코로만형 라이트 플라이급(48kg)과 플라이급(52-54kg) 두 체급에서 4개의 대회를 우승한 한국 레슬링 뿐만 아니라 가히 전세계 레슬링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또한, 그레코로만형 라이트 플라이급과 플라이급의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로는 코치 활동 및 레슬링 해설가로 나름대로 명성을 날렸으며, 현재는 개인 일을 병행하며 방송에도 간간히 출연하고 있다.
레슬링 심권호 나이 재산 건물 학력 선수경력 인스타 프로필 (+스타다큐 마이웨이 소개팅 김현영)
심권호
沈權虎 | Sim Kwonho
출생
1972년 10월 12일 (49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수진리
국적
대한민국
학력
수정초등학교 (졸업)
성남문원중학교 (졸업)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 학사)
종목
레슬링
체급
그레코로만형 -48kg → -54kg
신체
160cm, 58kg
종교
불교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imkwonho
심권호 학력 선수 경력 이력
어린 시절
소년체전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관왕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으며, 서울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유형 선수였지만, 자유형이 자기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 그레코로만형으로 전향했다.
1992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신의 체급인 -48kg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국제대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1991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권덕용에게 밀려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93년~1995년
하지만 권덕용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여 예선에서 탈락한 후, 그의 자리를 밀어내고 1993년부터 국가대표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1993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후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5 세계 선수권 금메달, 1995년과 1996년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며 일찌감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었다.
1996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대진이 최악으로 걸렸는데, 2회전에서 라이벌인 러시아 선수를 만났다. 이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2:1로 승리한 후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위기 없이 결승까지 순항했고,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4:0으로 승리하면서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따낸 1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자, 애틀랜타 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워낙 압도적인 기술과 경기 운영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순항할 줄 알았는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48kg급이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다만 알아둬야 될 것이 이것이 결코 심권호 때문에 사라진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체급을 줄여가는 과정에 심권호가 걸린 것일 뿐이다.
1997년~1999년
졸지에 레슬링 최경량급이 -54kg이 되면서 체중을 한 번에 6kg을 불려야 했고, 그 결과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체급에 적응한 후 다시 이 체급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후배인 하태연과의치열한 승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팀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심권호는 -48kg에서 그랬듯이 또 다시 -54kg에서도 같은 코스를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1998 세계선수권 우승,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9 아시아선수권 우승, 그리고 치열한 대표 선발전 끝에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 선수에 선발되었다.
2000년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4년 전에 비해 원숙해졌으며, 8강전에서 한 번 고비를 맞아 독일 선수와의 경기에서 5:4 역전승을 따냈다. 4강전에서 북한의 강영균을 10-0 테크니컬 폴로 눌러버렸고 결승에서는 당시 -54kg 세계 최강으로 여겨지던 쿠바의 '라자로 리바스'를 맞아 초반 상대의 방심을 틈타 8-0을 만들고 남은 4분 동안 끈질기게 버티며 우승을 차지했다. 훗날 IOC 인터뷰에서 이 당시 상황을 회고하기를 10:0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8:0이라서 남은 4분을 필사적으로 버텼다고 밝혔다. 이로써 서로 다른 2개의 경량급 체급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도 있는데, 심권호가 1996년 LF급 금메달-00년 F급 금메달을 목에 걸 때 불가리아 출신의 아르만 나자라얀도 1996년도 F급 금메달-2000년도 B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코치로 생활하다가,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현역 복귀를 전격 선언했다. 대표선발전 1차 대회에서는 후배에게 졌지만, 2차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오르면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했는데 협회가 이미 대표를 결정하는 바람에 올림픽 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본인은 올림픽 3연패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노력을 다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셈이 되었고 곧바로 진짜 은퇴를 선언했다.
사실 심권호 입장에선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였지만, 협회도 그렇고 레슬링계 내부에서 "그 정도나 했으면 이제 후배에게 좀 양보하지?"라는 심리가 없지않았다고 한다.
은퇴 이후
2004년
2004 아테네 올림픽에 SBS 해설자로 데뷔했다. 경기를 분석하고 전달하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같이 흥분하며 코치마냥 선수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한 해설을 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는데, 그나마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재미있는 해설이라는 의견도 많았고 정지현이 금메달을 따면서 분위기가 좋았던 것도 있었기에 그럭저럭 무난하게 넘어갔다.
2008년
그러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그의 해설 방식은 결국 다시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야이씨 바보야!"를 비롯한 정제되지 않은 멘트들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이로 인해 공개적으로 사과 방송도 해야 했다. 그 때만 생각하면 말도 못할 정도로 창피하다고 밝혔다. 사실 입담도 좋고 예능감도 있는데다 해설도 잘하는 편이지만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멘트를 사용해서 망가진 케이스로 봐야 한다.
그래도 말주변도 좋고 레슬링계의 전설이기 때문에 자주 해설 외에도 예능 프로그램에도 반 고정으로 나왔다. 특히 몸을 쓰는 예능에서는 거의 100% 단골이다. 한 번은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유일하게 몸을 쓰는 코너에서 쇠봉으로 만든 훌라후프를 돌렸다.
2012년
코치로도 활동했지만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다. 이 시기 출발 드림팀과 채널A의 불멸의 국가대표에 출연했다.
이후 코치 대신에 일반 직장인이 되어,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신도시 보상팀 팀장을 맡았다. 유명한 레슬러가 보상을 담당해서 그런지 험한 보상팀 임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보상 논의를 위해 험악하게 기다리고 있던 입주자들도 심권호가 나타나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술 한잔을 하며 좋게 마무리되었다.
2017년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본부 사회공헌팀에서 근무했으며, 사회공헌 업무로 타 기관과 협의가거나 임대주택 단지에 나타나면 바로 아이돌 수준의 환호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남남북녀에 출연할 당시 이미 알코올 의존증 수준이고 뇌와 간이 많이 망가졌다는 충격적인 모습이 나왔다.
2019년
뭉쳐야 찬다에 '작은 거인'이라는 닉네임으로 잠시 출연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 병행이 어려워 하차했다.
2020년
E채널의 사랑의 재개발에 출연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LH에서 퇴사했다고 한다. 이후 종합격투기 선수 및 방송인 김동현의 유튜브 채널 매미킴 TV에 출연해 그가 운영중인 MMA 도장 '팀 스턴건' 관원들에게 레슬링 실전강의를 했으며, 다른 격투기 관련 채널에서도 종종 모습을 비췄다.
2021년
종합격투기 관련 유튜브 채널인 무채색필름에서 그의 일대기를 시리즈화해서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런저런 근황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었다. 현재 조기축구 등 개인 활동을 하면서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관장이 경영하는 아마추어 레슬링 도장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관원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10월 28일 스타멘터리 특종세상에 최근 행적이 공개되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체육관 운영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하필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었다. 그렇게 할 일을 찾지 못하고 혼자서 외로운 나날을 술로 달래며 살다가 저질 체력이 되어버렸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술을 끊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심권호 유튜브 활동
자신이 가지고 있는 레슬링 기술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 + 이런저런 일상을 팬들에게 알리며 소통하고 싶다며 2021년 4월에 유튜버로 데뷔했다. 영상 업로드는 비주기적으로, 보통 1달에 1편 정도 올라온다. 알음알음 소문이 돌았는지 구독자 1만명을 넘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활동이 힘들지만 전국 레슬링 도장이나 아마추어 대회에 틈틈히 참여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한국 레슬링 꿈나무들을 위해선 어디던 찾아가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또한 위에 언급된대로 건강문제 때문에 술을 끊고 운동하는 영상도 자주 올라온다.
참고로 외국인들이 영상을 보고 기술이나 테크닉을 베끼면 어쩌냐고 말하는 팬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관심이 있으면 한국어를 배워서 할 테니 딱히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다른 유튜버들의 채널에도 간간히 게스트로 나오고 있는데, 주로 이종격투기 도장에 찾아가 레슬링 노하우를 전수하는 빈도가 높다.
심권호 평가
굉장히 영리하고 기술에 능했다. 상대에게 방심한 척 틈을 보여주고 미끼를 물면 바로 공세에 돌입해서 가볍게 제압했고, 기술 또한 다양해서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특히 대부분의 레슬러들은 1~2가지 기술을 주무기로 삼아 경기를 풀어가고, 상대가 이에 대비한 전술을 들고 나오면 막혀서 고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심권호는 기술 레파토리가 5~6가지 이상이라 상대하는 입장에선 대처 및 전략을 짜는게 굉장히 어려웠다.
유일하게 두 개의 다른 체급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모두 우승한 선수지만 아쉽게도 외신들의 이목을 끌진 못하고 있다. 그레코로만형 라이트 플라이급과 플라이급의 레전드로는 각각 빈센조 마엔차, 페타르 키로프가 꼽힌다. 마엔차는 척추측만증을 극복하고 올림픽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차지한 이탈리아 레슬링의 상징적인 선수며, 키로프는 플라이급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2개, 세계선수권 우승을 3회 달성했다. 이 두 선수도 레슬링계의 레전드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체급 변화를 극복하면서 마찬가지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두 차례 우승한 심권호가 저평가를 받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박장순과 함께 세계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 150인에 헌액된 유이한 한국인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이 독보적으로 강한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과 양궁을 제외하면 올림픽에서 두 개 이상의 금메달을 딴 선수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역대 최고의 한국인 운동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심권호 재산
광주에 땅이 있고, 현재 자가에서 생활하고 있다. 체육연금으로 사망시까지 월 100만원을 받는다. 현재까지 총 10억원이 넘는 연금을 수령했다고 밝혔다.(연금 상한선이 없을 때에는 월 200~3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 부모님의 재테크로 건물 2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권호 수상 기록 경력 이력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48kg
금메달
2000 시드니
-54kg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5 프라하
-48kg
금메달
1998 예블레
-54kg
동메달
1993 스톡홀름
-48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4 히로시마
-48kg
금메달
1998 방콕
-54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5 마닐라
-48kg
금메달
1996 샤오산
-48kg
금메달
1999 타슈켄트
-54kg
은메달
1993 히로시마
-48kg
심권호 기타 여담 일화
2018년 2월 1일 브라보 My Life에서의 인터뷰에서 "천재요? 저는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레슬링을 놀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미있었거든요. 놀다 보니까 어느 한순간 푹 빠져서 계속 놀았던 거예요. 남들은 다 안 된다고 했는데, 나를 어떻게 알고 자기들이 한계를 정하냐. 내가 할 수 있으면 하는 건데 왜 나를 자꾸 은퇴 시키려 하는지 그게 너무 화났어요.'''라고 말했다.
LH 직원으로 취직해 상당히 오랜 기간을 재직하며 부장직까지 역임했다. LH의 전신인 주택공사 실업 레슬링팀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사원 직위를 가지고 있었고, 대회에서 상위권 입상을 하면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는 제도의 혜택을 봐서 초고속 승진했다고. 이후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부장자리도 보장해 주겠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는데,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바로 부장자리에 올랐다. 주택공사가 LH로 바뀐 이후에는 선수로서 은퇴하고 사회공헌 부서와 보상 관련 부서들을 오가며 활동하다 2019년에 퇴사했다.
아직 미혼이다. 여담이지만 여자친구를 한 번도 못 사귀어 봤다고 한다. 원래 한번 연애했지만 올림픽에 집중해서 깨졌다고 한다. 위에서 서술한 흥분 해설도 성격이 지나치게 순수하고 멋없다 보니 발생한 것이라 한다. 그의 혼자 사는 싱글라이프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의 무심한 듯 시크한 태도에 감탄 및 웃픈 감정을 표하고 그를 구출할 처자가 어디 없냐는 네티즌이 대부분이다. 다만 예전 짝사랑의 감정이 남았는지 뭉쳐야 찬다에서 등번호로 5번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이는 짝사랑했던 여인이 좋아하던 숫자였다고 한다.
은퇴 이후 삶이 너무도 조용하고 소박하다. 이건 본인이 한참 운동할 때는 계체량이다 뭐다 하도 빡세게 살다보니, 좀 백수처럼 놀고 먹고 사는 게 소원이라서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금전적으로도 상당히 여유롭지만 이를 과시하는 사치스러운 언행도 거의 안하는 편이다.
IQ가 145다.
2013년, IOC에서 2020년 올림픽부터 레슬링을 잠정 퇴출하겠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행히도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으로 잔류하면서 한숨 돌린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드디어 국제레슬링연맹에서 발표하는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입회하는 영광을 안았다.
엄청난 실적을 쌓은 레전드인 건 사실이지만, 실제 업적 이상으로 부풀려진 정보가 떠돌기도 한다. 특히 국내외 대회에서 거의 무패를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 있는데, 관련 성적이 압도적인 수준인 건 맞지만 패배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또한 심권호가 워낙 무적의 기량을 자랑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48kg급이 폐지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낭설도 돌고 있는데, 실은 여자 레슬링의 창설과 올림픽 규모 축소화가 맞물려 체급을 줄이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에 불과했다. IOC는 국가별 종목 쿼터제를 줄 정도로 올림픽 비대화를 막느라 대단히 골몰하고 있다. 실례로 태권도는 8체급이 벌어지지만, 국가별로 4개 체급, 역도도 8체급 중 국가별로 5체급까지 출전가능하다.
2016년 우리동네 예체능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기원 레슬링 특집에서 박은철, 정지현 같이 출연했다. 여기에서 정지현과 스폐셜 매치를 벌여서 패배했다.
2017년 방송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알코올 의존증 + 알코올성 간염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에 3~4회씩 3병 정도를 마셨다고 한다. 연애 문제와 함께 선수 생활 당시부터 도전자들 사이에서 느낀 외로움이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건강이 크게 상했다고 한다.
신태용 감독이 K리그 첫 승을 거둘 때 세리머니로 맥콜을 뿌렸다. 마침 신태용 감독은 레슬링 유니폼을 입고 나와 심권호와 함께 파테르 퍼포먼스를 했다.
2019년 6월 13일에 첫 방송을 한 JTBC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의 '어쩌다 FC' 멤버로 출연 중이었지만, 2019년 9월 19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잠정하차했다. 위의 건강문제와 관련하여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지만, 심권호 측근의 말로는 개인사정 때문에 잠시 쉬게 된 것을 기자들이 부풀린 것이라고 한다.
매미킴TV에 출연하여 자신보다 40kg이나 더 무거운 김동현에게 옆굴리기를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군기가 상당한 운동부의 특성 상 학창시절 굉장히 많은 구타와 부조리를 당했는데, 2021년 초 유튜브 채널 '무채색 필름'에 출연해서 이 모든 걸 견뎌내면서도 절대 후배들에게 이를 되물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본인은 구타를 당하면서도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마인드로 참아냈고, 후일 선배가 되어서는 후배들을 안 건드리고 잘 지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땐 더 심했다면서 완화가 된 게 저 정도라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심권호 소개팅 (스타다큐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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